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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과 함께하는3. 나는 반대한다.



박영석과 함께하는 희망원정대를 검색하면서 깜짝 놀랐다.
이런 유사 국토 대장정이 적어도 일이십여개가 난립하여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고서 말이다.

그리고
문득.
문득 너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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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일을 일컬어 순례. 행진. 행군 등이라고들 한다.
순례는 어림풋 구별해 낼 수 있을 것 같으나 행진과 행군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그리고 한국의 유사 국토대장정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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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평화 행진(March, Movement)이다. 간디의 소금행진도 행진이라고 하는 듯.
이로서 행진이라는 뜻을 짐작해 내자면, 참여의 자발성, 진행의 주체성, 목적의 구체성을 추출해 낼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20대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는 각종 국토대장정은 행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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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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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K 국토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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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희망원정대


이들에게 참여의 자발성. 주체성. 구체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모두가 무리를 지어 자기  두발로 걷는건 행진과 다름없다.
그러나 주최자가 외부자이고, 참가여부나 행진이 지극히 타율성과 객체성을 띠게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그들이 내세우는 목적이라는 게 추상적 프루파간다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형용사와 부사가 다를 뿐, 그들이 표방하는 건, '자기 한계 극복. 자기 도전. 우정함양. 민족정기 앙양. 국토사랑'이다.
코에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인 이딴게 뭐 그리 이 각종 행군 고유의 지향일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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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주최자의 취지일뿐, 참가자인 20대 대학생들이나 미취업생들에겐 '스펙'을 위하는 목적이 적지 않음이 사실이다.
그리고, '스펙'은 대상으로부터 '소외'를 가져오게 되기 쉽다. 시험공부를 돌이켜 보자.

그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걷는 게 아니라, 단순히 '목적지'를 향해 두발을 옮길 뿐이다.

이런 걷기를 나는 행군이라고 부르고 싶다. 군대 행군에서처럼.
군대행군은 철저하게 목적지 지향이고 타율성이고 기계성이다.
심지어 깃발들고 오와 열을 맞추어 걷는 것조차 서로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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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개명사회에 20대들이 깃발들고 오와 열을 맞추어 걷는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다.

70년대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있었었다 해도 관제행군이었을테니 패스.
일본의 극우 황군노인들의 행군이야 일소에 부쳐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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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들불처럼 번졌던 1900년대 초기 독일의 반더포겔운동도 소규모, 자율적인 걸로 알고 있다.
보이스카우트, 히틀러의 히틀러유겐트나 중국의 홍위병은 어떨까?
이들을 거론하는 것은 적절한 예는 아니겠지만, 양해해 달라.
왜냐하면 역사에 조예가 없다보니
비 군사조직으로서 20대가 오와 열을 지어 행군을 하는 비견한 예를 찾아낼 수 없으니 안타깝다.

그런데 보이스카우트나 히틀러 유겐트나 홍위병들은 주로 십대들이었다.
십대 시절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자기의 주체적 판단을 하기에는 이른. 휩쓸리기 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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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들고 한여름에 한겨울에 일사분란하게 걷는게 과연 부추킬만한 일일까?
이런 국토대장정이라는 미명아래
사회지도층 인사 -이어령. 김남조. 유인촌 등-이 격려하는 것은 또 어떻게 볼 수 있을까?

60만 대군 강군인 한국군대가 대낮에 행군하는 모습을 보기란 극히 어렵다.
뿐더러 정규군인 한국군대에도 한여름 낮에는 연병장에 어린 병사들을 세우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이 행군에 참가하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한국의 좁은 땅떵어리가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행군거리가 짧아지니까.

이런 행군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까닭은,
한홍구 교수의 말대로 한국은 내재적으로 병영국가화 되어서일테고,
외부적으로는 노무현씨의 말처럼 권력이 국가권력에서 기업권력으로 넘어간, 기업 지배 사회가 되었다고들 하는데,
그러다보니, 기업이 그 규율성과 통제성을 이어나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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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개명국가중에 20대들이 오와 열을 지어 행군하는 예를 알았으면 좋겠다.
내 의문이 '쓸데없는' 의문이 되면 좋겠다.

그러기 전에는, 이 사회적 사건(?). 사태(?), 세태(?)에 대해 고민좀 하고 자료도 찾아보아야겠다.

그리기 전에는, 나는 저런 해프닝에 반대한다. 아니 싫다.
그들이 저런식으로 자기극복. 우정도모. 국토사랑. 민족정기 앙양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지도 않을뿐더러.



http://www.sportsseoul.com/new ··· .html
http://news.kukinews.com/artic ··· 21111
http://www.wandervogel.com/history.html#9
http://blog.daum.net/san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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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뚜껑으로 클라이머의 무브를....


병뚜껑 허투루 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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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윗사람의 이야기가 길어지걸랑
술자리가 지방방송으로 산만하거들랑,
상대방의 이야기가 마음결을 건딜거들랑...

진지하게 듣는 척 고개숙여 탁자밑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처음처럼이나 참이슬 뚜껑으로 클라이밍 무브를 만들어 보아야겠다.

ㅁㅁㅁㅁㅁㅁㅁ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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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뚜껑으로 다양한 무브를 만들어 보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박쥐길 날개를 가로질러 갈 때 언드크랙을 잡은.
박쥐길 날개를 꺽을 때, 오른쪽 다리를 올리는.....



ㅁㅁㅁㅁㅁㅁㅁ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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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여름무렵. 팔자하강기( 국산 주물제품으로 보이는) -한국의 산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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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하강기가 눈에 확 띠는...
누구더라. 이 클라이머 이름을 잊었네요.

ㅁㅁㅁㅁㅁㅁㅁㅁㅁ

.
쉽게 읽히는 시. 쉽게 읽히니까 또 푸념이 생기는....

처음 가는 길 - 도종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문학동네) 중에서



성글어도 티끌 하나 빠뜨림 없는 저 하늘도 얼마나 많은 날개가 스쳐간 길일 것인가. 아득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바다도 얼마나 많은 지느러미가 건너간 길일 것인가. 우리가 딛고 있는 한 줌의 흙 또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지나간 길일 것인가. 낯설고 두려운 곳으로 갈 때에 나보다 앞서 간 발자국들은 얼마나 든든한 위안인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지만 내게는 분명 처음인 이 길은 얼마나 큰 설렘인가.

시인 반칠환



사진출처:한국의 산천http://blog.daum.net/koreasan/ ··· 24020
http://yon888.egloos.com/


-은행나무 부부/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때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 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반칠환 시인의 시를 더 읽으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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