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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진 vs 월간 산


월간 산도 69년 당시 척박한 한국에서 힘들게 태어난 잡지입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발간된 <월간 사진>
44년이 되었다고 하네요..,..대단합니다. 구비구비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월간 사진이 44년을 돌이켜 보면서,
사진기는 럭셔리하게 업하면서 잡지를 구독하지 않는다는 푸념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 거기나 매양 같은가 봅니다...~~~

한국 산악인중에 과연 3개 산악잡지를 모두 구독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라는 질문이 가슴을 찌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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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산을 창간호부터 모두 소장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당장 몇명이 떠오르는데요. 오십여명 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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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산'으로 바꾸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어도  좋은 글인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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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재난 안전 관리반....


우연찮게 '안전보건'이라는 잡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이게 계기가 되어 살펴보았더니 '안전'과 관련하여 다양한 잡지가 발간되고 있더군요.

그중에 산, 북한산과 관련된 기사가 있길래 모셔왔습니다.
북한산에 산악구조대만 있는줄 알았더니, 북한산 재난 안전 관리반이라는 조직도 있는줄 처음 알았습니다...
어린 친구들도 많은 것 같은데 산악구조대와 조화롭게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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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마지막 남은 잡놈들이기를 바라며


산악인, 마지막 남은 잡놈들이기를 바라며....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로 시작하는 문정희의 '다시 남자를 위하여'를 읽자니
눈이 번뜩 뜨이네요.


 

다시 남자를 위하여 / 문정희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 처럼
온 몸을 던져오는 거대한 파도를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 뿐 눈에 띌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 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여권 운동가들이 저지른 일 중에가장 큰 실수는
바로 세상에서 멋진 잡놈들을 추방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핑계대기 쉬운 말로 산업사회 탓인가
그들의 빛나는 이빨을 뽑아 내고
그들의 거친 머리칼을 솎아 내고
그들의 발에 제지의 쇠고리를 채워버린 것은 누구일까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여자들은 누구나 마음 속 깊이
야성의 사나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
갈증처럼 바람둥이에 휘말려
한평생을 던져버리고 싶은 걸


안토니우스 시저 그리고
안록산에게 무너진 현종을 봐 그뿐인가,
나폴레옹 너는 뭐며 심지어 돈주앙, 변학도
그 끝없는 식욕을..
여자들이 얼마나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어찌된 일이야
요새는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때 묻고 약아빠진 졸개들은 많은데
불꽃을 찾아 온 사막을 헤매이며
검은 눈썹을 태우는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 멸종 위기네.







 


남자다운 남자들이 갈수록 희귀해진다고들 합니다. 시대에 따라 남성들의 역할과 거기 거는 기대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근육의 힘을 내세우고, 목소리만 크면 행세하던 행태는 마땅히 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용기로 상징되던 남성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습니다. 남자다움을 역사적·문화적·과학적으로 살피며 그 복원을 주장하는 책이 눈길을 끄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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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다움에 관하여
하비 맨스필드 지음
이광조 옮김, 이후
484쪽, 2만3000원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눈에 뜨이는 것은 초라한 잡종 뿐/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여권운동가들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멋진 잡놈을 추방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바드대 교수가 쓴 이 책은 여성시인 문정희의 시 ‘다시 남자를 위하여’에 대한 화답으로 읽힌다. 문정희는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졸개들은 많은데/(…)/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 멸종위기네”라고 개탄하는데, 저자는 멸종 직전의 남자·남자다움 회생 처방을 제시한다.

“멋진 잡놈”을 추방한 페미니즘과의 논쟁만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큰 문명사 차원의 문제제기인데, 그게 관전 포인트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홉스·니체·토크빌·헤밍웨이 같은 서구지성사의 큰 이름들을 총동원해 남성다움(manliness)의 가치를 넓고 견고하게 복원하려 한다. 요즘 유행처럼 진화생물학 언저리를 맴도는 방식과 또 다른, 남자론의 확전이다. 출발은 상식적 관찰이다. 왜 요즘 들어 멋진 남성상인 신사가 사라졌는가?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자랑으로 아는, 여성다운 여성 역시 함께 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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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힘으로 상징되는 남자다움이 갈수록 사라지는 데 대한 반동으로 우리는 이른바 ‘초컬릿 복근’에 더 환호하게 된 것 아닐까. [중앙포토]
이 통에 쪼그라든 남성들은 성적 표현에 미숙해졌고, 여성들은 까칠한 성격으로 변했다. 성희롱 등 비열한 행동을 막겠다고 설치는 바람에 남자·남자다움 모두를 추방해버린 모양새다. 저자가 보기에 “광채 나고 완벽한 인간”인 신사는 함부로 으스대지도 않고, 약한 사람이나 여성을 이용해먹지 않는다. 그에 비해 우리시대는 남자가 여성 같고, 여성이 남자 같은 유니섹스 즉 성 중립의 사회로 변질했다. 남은 건 기계적 남녀평등의 황량함 뿐이다.

그건 “여성들은 남성과 비슷해지거나 또는 남성과 똑같아지는 방식으로 평등해지길 원했기”(19쪽) 때문이다. 실은 그 이전부터 두모스(thumos)가 실종됐다. 두모스는 서양판 호연지기(浩然之氣).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시절인 고대 그리스어로 혼·기개 혹은 용맹함을 뜻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두모스를 “털을 곤두세운 개의 사나움”(387쪽)으로 표현했다. 단순한 공격충동·지배욕과 달리 목숨을 던져 남을 구하는 용기의 남자다움이다.

두모스의 부활을 꾀한 게 『군주론』의 마키아벨리. 그는 조금 다른 뜻으로 아니모(animo)란 말을 썼다. 힘 또는 활력을 뜻하는 이 말은 야수적 공격성이자, 요즘의 국가안보 개념과도 상통한다. 물론 저자는 안다. 성적 중립성을 비판하는 전투가 세 불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자기 책이 “남자다움에 대한 온건한 방어”라고 스스로 정의한다. 어쨌거나 “남자다움은 분명 존재하지만, 다만 버려졌을 뿐”(432쪽)이라는 문제의식은 음미해 볼만한 얘기다. 그런 남자다움은 언제 어떻게 버려졌을까? 페미니즘의 득세 때문에? 아니다.

그에 따르면 수컷기질의 문화적 거세(去勢)는 뿌리가 깊다. 합리성·전문성을 추구하는 근대사회 자체가 주범이다. 고대사회만해도 특유의 사나움과 남자다움이 사회의 운용원리로 중요했다. 마키아벨리가 아니모란 말을 만든 것도 고대의 부활을 노린 것인데, 안타깝게도 모던사회 등장이후 남자다움은 압살 당했다. 근대의 주역인 부르주아 계층을 보라.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전문가적인 이성과 침착함이지 남자다움은 아니다. 그들이 코 빠져 지내는 비즈니스란 것도 승리보다는 이익을, 희생 대신 계산을 우선한다.

그런 부르주아 사회를 철학자 니체는 “사랑과 야망이 없는 단조로운 곳”이자 “시시한 풍경”이라며 경멸했다. 이에 힘입어 저자는 회심의 총공격을 감행한다. 어쩌면 민주주의 사상 자체가 문제다. 그는 고전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 토크빌의 말을 인용하면서 민주주의가 장기화되면 시민들은 서로 고만고만해진다고 지적한다.

페미니즘·근대성과 민주주의 전체를 싸잡아 공격하는 맨스필드의 논리는 때론 위험하다. “남자다움은 전쟁을 선호하고 위험을 즐기며, 영웅을 존경하다. 합리적 통제는 평화를 원하며 위험을 감소시키며, 영웅보다는 역할모델을 선호한다.”(439쪽) 등도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당신이 말하는 남자다움은 시대착오적 전쟁광이나 파시즘 논리와 뭐가 다르냐?”는 역공을 받을까봐 조마조마하다. 너무 그를 몰아세우진 말자. 여성은 여성답고, 남자는 남자다운 것이 그가 생각하는 궁극적 남녀상이다. 정치철학자인 그는 미국 우파 학계의 거물. 칠순의 나이의 그가 전공과 무관해 보이는 이 저술을 낸 것이 2006년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였다.

조우석(문화평론가) http://article.joins.com/artic ··· 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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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문제는 벽 2- 의심하는 이들에게


클라이머러스한 책 표지를 올립니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의심하는 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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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의심할만 하네.
저 무브들좀 보아.
삽질하는 놈 말고는 하나같이 거짓. 허위이잖아.

그렇다면 삽질하는 놈은 진실인가?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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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문제는 벽   .........    http://www.re-rock.com/2244, http://www.re-rock.com/2331
벽 놀려서 뭐합니까? .....  http://www.re-rock.com/1244



http://www.pressian.com/articl ··· %3D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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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조작 또는 오인? 책임은?



오은선은 적극적으로 조작하려 들었던 걸까요? 아니면 단순히 오인한 것에 불과할까요?
또, 과연 책임이 오은선으로 몰고 가야 할까요?

아래에 이와 관련하여 읽어봄직한 '오류' 이야기입니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유레카] 의도적 귀인 오류 / 김지석 한겨레신문 09 07 16

피델 카스트로 쿠바 지도자에 대한 글을 사람들에게 읽히고 글쓴이들의 친·반 카스트로 성향을 평가하게 했다. 그랬더니 대부분 글 내용보다 강한 평가를 내렸다. 다음에는 글쓴이들이 추첨으로 정해진 입장에 따라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정보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상황의 제약을 간과하고 글 내용에 맞춰 글쓴이 성향을 판단했다. 미국 심리학자 에드워드 존스와 키스 데이비스의 1967년 실험 결과다.

이렇게 상황보다 개인의 특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근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한다. 어떤 일이 생길 때 냉철하게 상황을 따져보기보다는 초점이 되는 특정인의 특성 탓으로 돌리려는 심리다. 이와는 반대로 스스로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자신의 책임보다 불가피한 상황을 거론하는 경우가 흔하다.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이다.

근본적 귀인 오류 심리는 여론조작에 활용되기 쉽다. 과거 조지 부시 전 미국 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위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악으로 몰아붙인 것이 단적인 보기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제조·확산 여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에 앞서 후세인의 사악한 의도를 부각시켜 국민을 오도한 것이다.

최근의 디도스 사이버 공격과 관련해 국정원이 초반부터 북한배후설을 퍼뜨린 것도 비슷한 사례다.

큰일이 닥친 뒤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정확한 원인을 찾기보다는, 나쁜 의도를 가진 누군가에게 빨리 책임을 묻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악용한 것이다.

 속셈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는 점에서 ‘의도적 귀인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북한과 관련된 의혹은 반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까지 충분히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격의 진원지가 영국에 있는 컴퓨터로 확인됨으로써 국정원의 주장은 더 취약해지고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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